⑤인터뷰 #1 기획자 이권형
지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2018년 7월, 인천의 세 싱어송라이터 Pa.je 이권형 박영환이 함께 컴필레이션 음반 [인천의 포크]을 제작했고, 이어 2019년 연작 [서울, 변두리]를 발매합니다. [인천in]은 이에 매주 1차례씩 8회에 걸쳐 지역 음악과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음반 제작 프로젝트의 취지와 내용을 소개하며, 인천과 서울, 그 변두리 지역을 오가며 활동한 세 팀(클라우즈 블록, 단식광대, 물과음)과 함께 음반 제작 과정과 프로듀서 인터뷰, 아티스트들의 대담 등을 기록하고 그 의미들을 찾아봅니다.
2019년 7월 6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신용산 ‘카페 알토 바이 밀도(cafe Aalto by Meal)’에 모였다. 인터뷰어는 싱어송라이터 ‘회기동 단편선’이 맡아주었다. 기획자인 필자와 1시간, 이번 [서울, 변두리]의 전담 엔지니어 서준호와 1시간 가량 인터를 나눴다. ‘인천의 포크’의 프로젝트 의도, 인천의 문화예술 생태계, 앞으로의 포부와 각자 음악 작업에 대한 생각 등이 담긴 인터뷰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2019년 7월 6일, 인터뷰 중인 회기동 단편선(좌)과 이권형(우)
– 회기동 단편선(이하, 단)/ 요새 관심사는?
이권형(이하, 이)/ 힙합을 많이 들어요. Lil Mosey나 국내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키드밀리 등, 힙합씬 신예들이 쓰는 훅(Hook)이 굉장히 팝(Pop)스러운데, 이런 것들에 많은 관심이 갑니다. 이런 걸 해야 하는 것 같아요.
– 단/ 팝스러운 훅을 만들고 싶은 건가요?
이/ 좋은 음악을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사람들 귀에 듣기 좋게 꽂히는 그런 것을 만들고 싶은 거죠. 기억에 남는.
– 단/ 본인의 작업은 그렇지 않은가요?
이/ 지금까지의 제 작업은 제게 의문이었던 것을 논문 쓰듯 풀어낸 느낌인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정말 말 그대로의 대중음악, 그런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 단/ 왜 그런 생각이 드는걸까요.
이/ '음악을 왜 해야 하지' 생각을 하다 보면 회의감이 계속 들어요. 시간은 계속 흐르고 저도 아직은 어리지만 앞으로 나이도 들 것이고 포지션도 계속 바뀌어 갈텐데 제가 나이든 다음을 생각해보면 사람들 기억에 남는 작업을 해두고 싶어요.
– 단/ 롤모델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이/ 제가 '하나음악'(80년대 음반사 ‘동아기획’의 주축 조동진, 조동익을 주축으로 설립 된 음반기획사이다. 현재 ‘푸른곰팡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분들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있어요. 어째서 이분들을 이리도 신화화하는지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있기도 한데, 장필순 선생님 같은 분들은 또 너무나 훌륭하시잖아요. 독립적으로 기획을 하고, 또 그것이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어필되죠. 그런 것이 유효하다고 봐요.
– 단/ 하나음악이라고 하면 장필순 선생님 같은 스타플레이어도 있지만 한 편으론 커뮤니티로서의 의미도 있어요.
이/ '인천의 포크'도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곡을 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여기까지 왔고, 운좋게 인천의 포크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꿈꾸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 단/ 인천의 포크도 공동체, 커뮤니티, 네트워크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나요?
이/ 그런 것을 하려고 했죠. 실은 사회에 어떤 행태들이 있어요. 예술가들이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것들이 있죠. 별 것 아닌 영향력에 일희일비하게 되기도 하고, 자치단체나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예를 들어 '인천의 지명을 들어간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요구도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해 비틀고 싶어요. 독립적인 새로운 풀(Pool)을 만들고 싶은 거죠.
“저도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인 것 같아요. 내부에 밀착되어 있다기보다는.”
– 단/ 인천의 포크 프로젝트에 참여한 멤버들은 권형씨를 제외하곤 인천의 아트 커뮤니티와 큰 관련이 없어요.
이/ 인천의 아트 커뮤니티는 정말로 그 동네의 사람들인 것이니까요. 그게 특이해요. 경계가 있어요. 오늘도 인천 쪽에 넣을 제안서를 쓰고 있는데 '인천예술생태계'라는 말이 있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카테고리가 있는 거예요. 꽤 장문으로 답을 쓰는데 굉장히 어려웠어요. 기본적으로 인천의 아트 커뮤니티는 컨템포러리(contemporary), 파인 아트(fine art) 계통이에요. 제가 하고 있는 대중음악과는 괴리가 있죠. 그래서 그 커뮤니티에 접근하고자 하면 컨템포러리한 언어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한편으로는 그 계통 특유의 게토화된 언어도 분명히 섞여 있어요. 그것이 생태계의 개성을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정치를 만들기도 해요. 제 바운더리에서 접근하긴 어려워지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뚫기 위해, 가교역할을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천의 포크는 그런 작업으로서의 첫 결과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 단/ 정치를 만들어내는 건 나쁜 일이 아닌데요. (웃음)
이/ 정치를 만들어내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그 안에서 허용되는 형식을 구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다른 문제에요. 그 언어 안에서 포멀한 형식들, 이를테면 뮤직비디오, 음반, 이런 것들로만 설득되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 단/ 포멀하다는 것은 상품화의 가능성과도 연관이 됩니다.
이/ 인천의 아트 커뮤니티에서의 작업들은 일반적인 상품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예술의 존재 이유나 형식 자체를 고민하는, 경계에 있는 작업이 많고 그것이 매력이죠. 그 동네에 저작권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장르로 따지면 특히 음악 파트가 약하다고 해야 할까요. 인천 재즈는 전통이 있고 또 그 안에서 비집을 틈도 있는데, 그 외에 메시지, 이야기, 서사가 있는 음악들은 정착할 틈이 없죠. 사실 그건 어느 생태계나 마찬가지인 것 같긴 하지만(웃음).
– 단/ 인천의 포크를 냈을 때 인천의 평단 또는 아트 커뮤니티에서는 반응이 있었나요?
이/ 결을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지만 실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인천의 주요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오석근 형이 앨범아트를 했다는 정도? 그래서 저도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인 것 같아요. 내부에 밀착되어 있다기 보다는.
– 단/ 음악에 대한 '시선'을 형성하는 그룹은 아트 커뮤니티 외에도 많아요. 이를테면 애호가라는 존재들도 있고.
이/ 동네의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는 끌었어요. 굉장한 성과지요. 제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셨다고 생각해요. 또 재미있는 것이, 대만의 타이페이에 있는 하루하루방송국과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아직은 음악적인 교류보다는 정서적인 교류에 가깝지만, 그런 것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게 참 보람 있어요.
“극단의 인디펜던트로 작업을 했고, 그럼 관객 수가 얼마나 들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2019년 7월 6일, 인터뷰 중인 회기동 단편선
– 단/ 인천의 포크를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 파제, 박영환이 함께했어요. 그들과 함께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일단 파제는 굉장히 친하기도 했지만 제가 방금 말씀드린 이런 마음들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박영환은 인천에 살고 있었고. 중고로 밥솥을 거래하면서 알게 되었죠. (웃음) 저와 파제는 조금 매가리가 없어서, 박영환이 가진 특유의 ‘아우라’가 필요했어요.
– 단/ 인천의 포크 프로젝트로 [인천의 포크]와 [서울, 변두리], 이렇게 두 장의 앨범이 나왔습니다. 처음 앨범을 냈을 때와 지금의 시점에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이/ 근거가 강해졌어요. 이전에 [Sound of Incheon]에 참여할 때나 싱글 <수봉공원>을 낼 때도 기존의 관습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는데 [인천의 포크] 때만 해도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의 양이 조금 적었죠. 그런데 [서울, 변두리]는 영문명이 'Folk of the Suburbs'에요. 교외, 변두리라는 테마를 통해, 보다 말하고 싶은 바가 확실해진 부분이 있어요.
– 단/ 인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도 많아요. 소위 '홍대앞'이라 불리는 씬에서 인기를 얻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 애초에 '인천'이라는 로컬리티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변두리'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정서라고 해야하나… 그런 게 더 중요했어요.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언어가 있는데, 우리가 영향받아 온 '홍대앞'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지 오히려 우리가 계속해나갈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있어요.
– 단/ '홍대앞'에서 성과를 내는 게 나쁜 일은 아닌데요.
이/ 물론이죠. 하지만 이를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정신력의 소모,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할까에 대한 의문이 늘 있어요. 물론 잘 갖추어서 해야 하는 것은 맞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불필요한 소모가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우리의 언어로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울타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느낌으로 작업해나가는 것이죠. 물론 홍대앞 씬의 방식도 좋고, 어찌 보면 저도 그렇게 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게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 단/ 자신의 언어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 이런 것을 최대한 완곡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제가 직접 다 얘기하고 다니면 재미도 없고 뭣도 없으니까요. (웃음) 오래 남는 언어로서의 음악을 만들고 싶은 거죠.
– 단/ [서울, 변두리]를 발매한 직후입니다. 지금은 어떤 느낌인가요?
이/ 계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는 조금 무리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기획자로서는 리딩 할 수 있었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로 치면 《옥희의 영화》 같은 느낌의 작업이었다고 할까요. 극단의 인디펜던트로 작업을 했고, 그럼 관객 수가 얼마나 들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소규모로 돌릴 수 있는 프로덕션의 기틀이 갖추어졌다는 것이 중요해요. 요새는 작은 레이블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인데 D.I.Y.도.
– 단/ 인천의 포크 프로젝트의 다음 작업은 무엇인가요?
이/ 아직 막연하긴 하지만 동요집을 만들 계획입니다. 산울림의 음악으로부터 인사이트(Insight, 통찰)를 받은 것이 있어요. 거의 그냥 사이키델릭(psychedelic)인데 동요집이라고 우기는 면이 있잖아요. 제가 [인천의 포크]를 할 때 파제를 많이 놀렸는데 파제가 노래할 때 너무 정직하게 딱 떨어지는 발음으로 해요. 그래서 놀리다가 생각해보니 이런 창법이 동요로선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동요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인천의 포크]라는 건 왠지 민요적인 스탠스이고 로컬리티가 강조된 작업인데 '어린이'란 보다 보편적이잖아요. 그래서 반대급부로 외연을 보다 넓힐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되었어요.
– 단/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이/ 대만 영화 <로빙화>의 사운드트랙 <로빙화(魯氷花 : The Dull-Ice Flower)>인데 요새 다음 작업에 많은 영감을 받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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