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결국 글은 받지 못했지만 편지를 쓰며 ‘서울, 변두리’ 컴필레이션 기획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어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하 전문)
000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노래를 짓는 ‘물과음’이라고 합니다.
<인천의 포크2 – 서울, 변두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기획자인 이권형님이 저보다 더 자세한 배경 이야기를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해서 저는 자리를 빌려 왜 음악평론가가 아닌, 역사학자인 000 선생님께 해당 컴필레이션 앨범의 소개 글을 요청 드리고 싶은지 간단한 맥락을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변두리(邊-두리)’라는 단어는 가장자리를 뜻하는 한자 ‘변’과 ‘두리(둘레)’가 연결된 일종의 겹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잘못된 표현이 굳어진 사례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변두리의 외곽성을 심리적으로 과장해 밀어낸 것에서 기원한 것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사실 변두리라는 구획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동심원의 폭이 좁을수록 변두리성은 커지겠죠. 그렇게 변두리라는 것은 유동적이며 매우 포괄적인 인식 속에 존재하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변두리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측정할 수 있는 중심부로부터의 물리적 거리 개념인 것 같습니다. 변두리에 산다는 의미는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해 더 많은 이동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지급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거리가 뺏어가는 것은 시간의 영역이며, 동시에 자신의 시간성도 축소됩니다. 또한 시간을 근간으로 향유할 수 있는 개인의 다양성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도시는 구조화 되어 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오랜 기간 서울 변두리 도봉구에 살고 있습니다. 평화시장 노동자였던 전태일이 자신의 차비로 여종업원들에게 풀빵을 사 먹이고 왕왕 걸어 오갔던 창동(현 쌍문동)인근이 제 실질적인 고향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 거리감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저의 논지로는 이상의 이동시간은 개인을 앗아가는 무의미한 시간입니다. 그 거리감은 전태일의 시간을 앗아갔죠. 그가 변두리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은 절대화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간을 물리적으로만 비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누구라도 회사 안에서의 일상적이고도 개인적인 노동시간과 면회소의 남북이산가족 상봉시간이 절대적으로 동일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을 반추하는, 시간 속에서 그 의미를 재해석해나가는 인간이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같은 예로 전태일의 이동시간이 그에게 어떠한 의미로 구현되었는지, 그 시간동안 그는 어떠한 생각을 하며 걸어갔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시간이 무의미했다고 또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태일의 시간은 곧 전태일이었으니까요. 그는 그 거리감 때문에 전태일일 수 있었고, 그 변두리성 때문에 오히려 부패되지 않는 시간의 중심부에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기서 저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들의 음악은 과연 언제 구성이 된 것일까요? 저를 비롯한 다른 두 뮤지션을 감히 고려하건대, 긴 이동 거리와 그 시간 속의 고인 시선 안에서 우리들의 음악은 이미 창작 전에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음악에는 다리가 있습니다. 다리가 있는 음악, 결국 두 다리가 만들어낸 ‘타박타박, 터벅터벅’ 걷는 음악들입니다.
그렇기에 현장에, 그 거리에, 그 광장에, 그 길에 계시던 000선생님께 미처 저희가 가지지 못한 동행자로서의 자리를 부탁드려봅니다. 혹, 책에서 언급하셨던 것처럼 이름이 무거우시다면 무명씨의 글이라도 좋습니다. 선생님과 우리가 함께 보았던 거리와 사람, 그리고 그 안에 펼쳐지는 다양한 소음들이 내는 일종의 질서(리듬)를 선생님만의 언어(악보)로 드러내 주셨으면 이 프로젝트가 스스로 자리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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