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형 2집 - 터무니없는 스텝]
정물화를 그린다고 한번 상상해 보자. 우리는 그 물상이 고정되어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물론 내 눈앞에 아무런 미동도 없는 존재를 의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상의 정물화를 100년에 걸쳐 완성하고 있다 가정한다면 첫 스케치의 대상과 지금의 대상은 여전히 동일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심 앞에 우리는 이미 정물화일 수 없는 그림의 존재를 부정해야만 할까? 혹은 이미 실제와는 상관없는 물상을 머릿속에서 구조화하며 전혀 새로운 그림을 이어가야만 할까?
이권형의 2집 <터무니없는 스텝>은 후자와도 같이 흡사 대상 없이 그리기 시작한 그림과 비슷하다. 그렇기에 그가 그리고 또 말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번에 인식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해당 노래들이 진행 방향을 잡고 제작한 것이 아닌 방향을 잡기 위해 진행된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며 전체 트랙 리스트를 훑는다. 그러자 해당 앨범 트랙 사이에 연결된 미세한 선(線)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노래 제목과 가사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이 앨범은 구체적 공간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실질적으로 이것은 일종의 ‘의식의 여행기’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다. 실존하지만 닿을 수 없는 곳, <오키나와>에서 그는 ‘이번 생에 갈 수 있을까?’ 되묻고 있고, <산가리아본사견학곡>의 희망과는 달리 (녹차와 우롱차로 유명한) 산가리아 본사에는 견학 프로그램이 없다! 하지만 그에게 이것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도착지’라는 개념인 것 같다. 실제 대상보다는 캔버스에 그려진 전혀 다른 그림이 대상의 실제라고 믿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와 같은 접근방식 때문에 평소 그의 노래를 익히 듣던 이들에게 [터무니없는 스텝]은 다소 낯설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앨범이 그의 지난 앨범 [교회가 있는 풍경]과 비교해 그 서정적이고도 예민한 정서가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위트와 즉흥성으로 꾹꾹 숨겨 놓았을 뿐. 이것은 그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가 여행을 통해 마주한 세계는 <험한 세상>이고 시간성(타임)에 묶여 있는 제한적 세상이다. 그래서 그는 <물상>의 고정된 세계를 떠나 중간 단계인 <오키나와>나 산가리아 본사와도 같은 가상의 세계로, 그리고 그것은 결국 무한성에 가까운 시간으로까지 개념을 뒤틀어 다다르고자 한다. 총 9개의 트랙, 25분. 말하고자 하는 범위에 비해 제법 속도감이 있는 여행이다.
따라서 그는 발길이 급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은 곁에서 바라보기에 어딘가 불안해 보일 정도로 다소 터무니없는 스텝일 수도 있겠지만 그 비틀거림이, 그 성마름이 박자를 만들고 이내 춤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 스텝 속에 느닷없이 파티는 시작되었고 싱어송라이터 이권형은 그 리듬 속에 함께할 파티멤버, 아니 여행의 동료를 지금 구하고 있다. 아마도 분명 즐거울 것이다.
- 경자년 아홉 번째 달, 물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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