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데콤’을 작곡한 것은 2019년경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이키델릭하지만 섬세한 멜로디가 살아있는 노래를 만들어 보자’라는 단순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이 곡에 정서가 덧입혀져 하나의 ‘노래’로서 기능한 것은 가사가 완성된 2020년 중반이다. 그 시기는 코로나19 사태와 종교계 안의 감염확산 논란이 맞물려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생산해낼 때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나는 에릭 호퍼의 <광신자>들이라는 책을 떠올렸고, 그 안의 집단의 광기, 집단의 무의식 등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는 집단적 회복을 꿈꾸지만, 누군가는 집단적 멸망을 꿈꿀 수도 있는 상황, 그렇게 집단이란 또 다른 생명체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코로나19 때문에 ‘힐데콤’의 실제 작업 또한 계속 미뤄졌다. 원래는 7월에는 발표하려고 했는데, 가족의 걱정이 심해 제작 일정을 계속 연기했던 것이다. 이번 레코딩도 <서울,변두리>, <모두의 동요>때 합을 맞춰보았던 서준호 프로듀서와 함께했다. 그는 나의 형이상의 이야기를 언제나 형이하의 세계로 구현하는 샤먼 같은 존재였다. 사실 ‘힐데콤’은 그와의 공동작업 이상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대화와 작업을 이어가며 노래는 내 첫 데모와는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내 데모버전은 좀 밝고 가벼운 버전이었다면, 중간 작업 당시에는 사이키델릭 재즈로, 이후 최종적으로는 뭐라 정의내리기 힘든 장르가 되었다.
곡에 대한 나의 편곡 요구는 단순했지만 이상한 것이었다. ‘기타가 중심이 되는 엠비언트곡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레퍼런스 트랙으로 나는 ‘디페시모드’의 <배럴 오브 어 건>, ‘비틀즈’의 <투모로우 네버 노우즈> 등을 꼽았다. 또한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좋은 곡은 필요 없다. 다만 결정적인 순간 몇 초가 노래 안에 구현되어야 하고, 그 몇 초를 위해 몇 분을 기다릴 수 있는 트랙이어야 한다’는 관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리스너의 입장에서 나는 이상의 구현에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첫 레코딩은 8월이었고 최종 녹음은 10월에 마쳤다. 총 3회차의 일정이었다. 방향성과 결을 맞추는 것이 급선무였다. 첫 작업의 결과물은 피아노를 베이스로 한 퓨전 재즈 같은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2절 벌즈에 살포시 담겨있으니 들어봐도 좋겠다. 세부 작업은 다 준호님이 맡아 해주었는데 코드 감각이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좋은 코드 라인을 감각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곡 작업이 진행되면서 후렴구도 일정 부분 삭제되는 등 몇몇 구성의 변화가 있었다. 그래도 가장 큰 변화는 곡의 ‘무드’였다. 해서 초기 기획보다 무겁고 비장미 있는 곡이 되었다. 나는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또 벌즈 부분이 추가되면서 초기 기획했던 가사와 멜로디에 누락이 발생했다. 이를 어떻게 채우나 고민했는데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사람의 음성’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랭보의 시집을 가져가 시 하나를 읊조려 봤는데 뭔가 목소리도 별로이고 다소 현학적인 느낌이라 좋지 않았다. 좀 더 무거운 목소리가 필요했다. 해서 유튜브를 뒤져 레닌의 연설을 찾았는데 목소리도 맘에 들고 곡의 분위기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수많은 군중 앞에 일장 연설을 하는 레닌의 모습이 해당 테마에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곡의 포인트는 뒤쪽에 다 밀어 넣었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감정을 증폭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 내 요청에 의해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서준호 프로듀서가 흡사 지미 핸드릭스 같은 멋진 솔로를 넣었지만 최종적으로 삭제했다. 좀 더 먹먹하고 심플한 편곡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아웃트로의 뫼비우스띠 같은 반복효과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믹싱 작업 중 우연히 인트로 부분이 아웃트로에 섞여 들어갔는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 나는 이 노래가 광기(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한 이야기이니 도입부에 그것이 천천히, 슬그머니 퍼지는 느낌을 사운드로 구현하고 싶었다. ‘힐데콤’은 서사이자 묘사의 음악이었으면 했다(해서 노래 도입 1분 동안은 그 묘사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운드가 극단으로 치닫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흡사 카뮈의 소설 속 그 ‘페스트’처럼 말이다. 또 영화 끝난 줄 알았는데 부활하는 헐리웃 영화의 악당처럼, 혹은 영화 속 쿠키 영상과도 같은 효과가 있었으면 했다. 인간의 광기 또한 바이러스처럼 잠잠하다가도 시기가 지나면 스멀스멀 기어오르니 말이다.
노래를 만들어 놓았지만 유통배급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평소 발매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A유통사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고, 과거 다른 팀으로 활동할 때 도움을 준 B유통사도 거절을 했고, 마지막으로 호감을 느끼고 있던 C유통사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그곳은 회신조차 없었다. 과거 활동할 때 너무 쉽게 유통사를 찾아 다소 방심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나의 음악을 되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또한 다음번 음원 제작 시 무엇을 함께 고려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이것저것 관련 고민하다가 너무 어떠한 형태에 기대는 것만 같아서 이번에는 독립적으로 발표를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해서 딱 못하는 페이팔 계정도 만들고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멜로우 피시’ 라는 레이블 이름도 함께 생각했다).
먼저 음악을 들려준 한 지인이 내게 말하길 ‘음원 사이트 미리 듣기가 30초인데 무슨 생각으로 1분 동안 같은 소리만 나오는 음악을 만들었냐’며 나무랐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현재와 현상에 대한 나의 사적인 기록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론을 찾다가 이렇게 된 것이니 나도 딱히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간도 노래도 그렇게 알 수 없게 흘러가는 것이니까. 투모로우 네버 노우즈...
그래도 어느 순간 지금의 2020년을 다시 떠올려야 할 때면 이상의 노래가 그 기억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난 이제 막 첫 번째 미션을 끝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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